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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   

w. 민

"블랑, 씻으러 갈래? 도와줄게."

 

저번 임무 때 미처 살피지 못한 적에게 기습을 받아 당분간 팔을 쓰지 말라는 말을 그가 의사에게 들었기에 레이는 그에게 제안했다. 얼른 나아야 할 텐데. 그가 다쳤을 때는 심장이 툭 떨어지는 줄 알았다. 왜 발견하지 못했지, 내가 알아차렸으면 블랑은 다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그나마 별로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 혹시 단번에 즉사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정말이지.., 파트너로 실격이야.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꼴이라니.. 그가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레이?"

 

그렇게 한참 자책하고 있을 때에 씻으러 가자고 해놓고 다른 생각을 하는 그의 이름을 블랑이 부르자 그제야 레이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웃어 보였다. 씻으러 가자. 물론, 진짜 다른 뜻은 없어. 알지? 제가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까 봐 말을 급히 덧붙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랑은 알겠다며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먼저 화장실로 향하자 급히 따라갔다. 그러다가 테이블 다리에 발가락을 찧은 것은 덤. 아야.., 아파서 조금은 울상을 지으며 화장실 문을 열자 옷을 벗고 있는 그가 보여서 어쩔 줄 몰라하며 문을 닫고 문에 머리를 박았다. 아 진짜…. 너무 예쁜데 내가 잘 참을 수 있을까부터 걱정되었다. 분명히 그럴 의도는 없는데... 이 생각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블랑에 한숨을 푹 쉬고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갔다.

 

"미안, 메시지가 와서 확인하느라."

 

사실은 그게 아니지만, 순간 당황해서 그런 거지만. 대충 둘러댄 말인데도 블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는 다행이라는 듯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그의 다친 팔에 옷이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옷을 벗겨주었다. 확실히 몸에 몇 개 상처가 새겨진 것을 보니까 좀 싫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더 줄어들었을 텐데 싶어서. 조금은 시무룩해진 얼굴이 된 것도 잠시, 몸을 씻어주기 시작하자 며칠 전 밤이 생각나서 귀가 조금씩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블랑은 이걸 몰라야 하는데, 다친 애를 씻겨주면서 흥분하다니 얼마나 별로겠어. 싶어 계속 그의 눈치만 살살 보며 저절로 눈이 가는 몸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말이 나올 리가. 반쯤은 혼이 나간 상태로 그에게 대답했다.

 

"레이, 오늘따라 좀 딴생각이 많네. 어디 아파?"

"아,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좀 네가 하는 말에 생각할 게 있어서."

"뭐가? 지지난번 파티 이야기?"

"응, 호박파이."

 

어..? 아까까지는 호박파이 이야기였는데. 그게 참 맛있었다고 하는 블랑의 입술이 촉촉해서 그런가 또 딴생각으로 새어버렸나 보다. 다행히 호박파이 이야기가 나오니까 다시 그 생각이 났는지 호박파이 맛있는 집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이 조금은, 귀여웠다. 그러니까 콱 덮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목이 말라서 물 좀 마시고 온다고 그리 말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서 뺨을 감쌌다.

 

"진짜.. 너무 예쁜 건 반칙 아니야?"

 

그래도 참을 건 참아야 해. 블랑의 부상이 누구 때문인데, 차가운 물을 한잔 마시고 좀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다시 욕실로 들어갔지만 보이는 것은 욕조 위에 걸터앉아있는 블랑이라 그 노력이 안타깝게도 겨우 가라앉혀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레이를 보고 블랑은 조금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리를 꼬며 바라보는데, 음..? 이거, 블랑이 노린 건가? 멍청하게 눈만 끔뻑이자 블랑이 쿡쿡 웃어버린다. 블랑.. 진짜..!

 

"아, 귀엽네. 레이는 반응이 귀여워서 놀려먹는 게 너무 재미있다니까."

 

그러니까.. 나는 쓰레기도 아니었고 블랑에게 착실하게 낚인 물고기였다는 소리..? 그것을 깨닫자 레이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내가 얼마나 자책했는데!

 

"너 진짜.. "

 

이걸 확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잔뜩 입만 나와서 그를 벅벅 씻긴 후에 샤워타올로 꽁꽁 싸맨 후에 혼자 휙 욕실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레이, 혼자 갈 거야? 응? 삐쳤어?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지만, 레이는 오늘 하루쯤은 더 삐쳐있기로 다짐했고 그대로 침대로 가서 툭 엎어졌다. 진짜 얄미워!!!

 

아무튼 그 뒤로 블랑이 레이가 삐진 것을 풀어주느라 와서 한참을 달랬다는 건 비밀이다.

Written by five wri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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